와이로

와이로

메인콘텐츠 바로가기

소통마당

고객의 소리

와이로

송천 0 83 2023.10.29 10:14



와이로(蛙利鷺)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히 민가를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 선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런데 그 집(이규보)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했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주모에게 외딴 집(이규보 집)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는 과거에 낙방하고 마을에도 잘 안 나오며, 집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안 오고해서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겼던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이란 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자"는 거였다. 백로를 심판으로 하고 노래시합을 하자고 했다.

이 제안에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기는 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 하다니...

하지만 월등한 실력을 자신했기에 시합에 응했다. 그리고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한테 뇌물로 가져다주고 뒤를 부탁한 것이었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의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시합에서 까마귀에 패배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주고, 

까마귀가 뒤를 봐 달라고 힘을 쓰게되어 본인이 패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꾀꼬리는 크게 낙담하고 실의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라는 글을 대문앞에 붙혀 놓았다고 한다. 

이 글은 이규보 선생이 임금한테 불의와 불법으로 뇌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급제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한 말이었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 란 말이 생겼다.

와(蛙):개구리와. 이(利):이로울 이. 로(鷺):백로로.

이규보 선생 자신이 생각해도, 그의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에 내놔도 안떨어지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돈도 없고, 정승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거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뒷거래를 하지 못하여  과거에 번번히 낙방하여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李奎報 선생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하기에 자신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 과거가 있다 해서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 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 후에 궁궐에 들어와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하였다고 한다.


과거를 보는 날, 이규보 선생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가 바로 “唯我無蛙 人生之限/유아무와 인생지한" 이란 여덟 글자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 선생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唯我無蛙人生之恨)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옮겨온 글 입니다.


가을인 듯 싶더니만 잠깐 스치고 곧바로 겨울로 넘어가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남청송농협 조합원 님 모두 건강하십시요?



Comments